아직은 이른 새벽, 살짝 열린 미완성의 그 틈 사이로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만국기가 여린바람에 견디지 못해 내는 소리라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매일 빗소리를 들으며 화장을 지우고 화장을 한다. 창백한 얼굴은 당분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적이 만든 괴이함은 친숙함으로 다가와, 그렇게 곁에 머물고 있었는데
깨어보니 봄이다. 봄은 되려 침묵했다.
모든 것은 내려 읽어도 추스리고 올려 읽어도 한 점에 도달한다. 돌아보면 마치 그 자리가 제 자리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평상의 모습으로 - 그것은 물리적인 변형이 가능한 고무와도 같았다.
망각이라는 힘을 빌려 그것의 의미를 왜곡시켜도 보았지만, 결국엔 끊임없는 징얼거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게 내재되어 있는 고결한 힘. 순수한 에너지, 응결된 결정체와도 같은 것들을 찾아내는 것.
영웅이 제 집을 떠나 홀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것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제 힘으로 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응, 나는 그렇게 배웠었지. 내 안의 달을 찾아가기 위해 나는 그 문장을 품었엇지.
시작, 이라는 단어는 아직도 무섭다. 새삼, 단어는 떠올리는 순간, 먼 지방의 방언이 되어 버린다.
스스로를 믿지 못해 그를 믿는다. 믿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음으로써 평상심을 유지 하기로 했다.
의미는 곧 녹아내려 하나가 될 것이다. 꽃을 줍는 것, 눈물을 닦는 것, 말을 아끼는 것, 소리를 기억하는 것, 이제는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마음에 품는 것. 그 모든 것들을 온 몸으로, 말없이 수긍하는 것.
낮과 밤은 이미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른 낮에 화장을 지우고 이른 밤에 깨어나고 이른 새벽에 화장을한다.
비는 여전히 환각이 아닌 그 자리에 내리고 있다.